‘롤스로이스’ 같은 대학을 꿈꾸다
- 등록일 : 2026.03.18
- 조회수 : 557
신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① ‘롤스로이스’ 같은 대학을 꿈꾸다
글|이광수
작가 소개
이광수는 33년간 기업교육과 학교교육 현장에서 활동하였다. 중앙대학교에서 행정학을 공부한 그는 1976년 포항제철에 입사하여 1985년 포항공과대학교 건설본부 발족 당시 학사과장으로 참여하였고, 개교 후에는 기획과장, 기획부처장, 총장 보좌역 등을 역임하였다. 1999년부터 2009년까지는 포스코교육재단 임원으로 재직하였다.
그는 대학 설립 준비 단계부터 참여하여, 설립 주역인 박태준 설립이사장과 김호길 초대 학장의 대학 설립을 향한 원대한 포부와 의지를 옆에서 지켜보았다. 개교 40주년을 맞아, 우리 대학이 품어온 정신과 가치, 그리고 그 뿌리를 정리하여 연재로 담고자 한다.
연재를 시작하며
40년 전 캠퍼스에 있었던 나무들이 땅속 깊이 뿌리내린 것처럼 포스텍도 세계의 명문 대학들과 당당히 경쟁하는 대학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큰 건물을 짓고 나면 최소 2백 명에서 6천 명까지 자기가 이 건물을 지었다고 나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건물 하나가 이럴진대 짧은 기간에 명문 공과대학으로 우뚝 선 포스텍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포스텍 캠퍼스에는 많은 사람들의 원대한 꿈과 열정이 녹아 있습니다. 개교 전후 그들의 희생과 흘린 땀을 생생히 지켜본 필자는 이들 애국적 인사들의 면면과 캠퍼스에 묻혀 있는 이야기들, 그리고 포스테키안이라면 꼭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이 연재가 포스텍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에너지가 되고 포스테키안의 긍지를 높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많은 애독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2026년 3월
이 광 수
포항의 갈증, 그리고 피할 수 없었던 결단
포항공대가 개교하기 전, 포항은 인구 20만 이상의 도시 중 4년제 대학이 없는 유일한 곳이었습니다. 포항 시민들의 대학 설립 열망은 뜨거웠고, 시민단체가 발 벗고 나서서 4년제 대학 유치 시민대회를 열고 각계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대학 설립의 절박함은 포항제철 내부에서도 터져 나왔습니다. 설비 확장과 경영 다각화로 우수 두뇌 유치가 시급했지만, 1984년 당시 포항제철이 확보하고 있던 박사급 인력은 고작 9명이었고, 그나마 대부분은 회사에서 유학을 보내 양성한 연구원이었습니다. 지방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려 포항제철 자회사인 제철엔지니어링(PEC)의 첨단산업본부를 서울에 두고 인재 유치를 추진하였으나, 인지도 부족으로 실패했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본 박태준 설립이사장은 결심했습니다.
“단순히 대학 숫자 하나를 늘리는 평범한 대학이 아니라, ‘한국에도 이런 대학이 있다’라고 자랑할 만한 국제적 수준의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을 세우겠다.”
그것은 포항제철만을 위한 학교가 아닌, 인류와 국가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진짜 "대학다운 대학”을 향한 선언이었습니다.

빈 좌대 ‘미래의 한국과학자’ 앞에 선 박태준 설립이사장 (1996년 12월 3일)
칼텍에서 만난 ‘롤스로이스’의 교훈
결심을 굳힌 그는 해외 출장 때마다 틈을 내어 MIT, 스탠퍼드대, UC버클리, 카네기멜론대, 독일의 아헨공대, 영국의 임페리얼대, 셰필드대, 스위스의 취리히공대, 오스트리아의 레오벤공대 등 세계 명문 대학들을 직접 찾아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중 그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곳은 미국의 칼텍(CALTECH)이었습니다. 학부생보다 대학원생이 많고, 학생 수보다 교수와 연구원 수가 더 많은 대학. 한국은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노벨상 수상자를 23명*이나 배출한 그곳의 저력에 그는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1984년 기준 노벨상 수상자 수를 표기함. 2026년 1월 기준 칼텍 출신 노벨상 수상자는 총 48명임.
면담 말미, 데이비드 모리스로 (David Morrisroe) 재정 담당 부총장이 던진 한마디는 오랫동안 그의 가슴에 남았습니다.
"굳이 우리 대학을 자동차에 비유한다면 롤스로이스에 해당합니다."
고급차 브랜드의 대명사인 롤스로이스. 차 한 대를 만드는 데 10개월이 걸리고, 1년에 단 6천 대만 한정 생산하며, 아무리 돈이 많아도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판매하지 않았던 콧대 높은 최고급 수제 자동차. 칼텍은 바로 그런 '수월성'의 상징이었습니다. 박태준 설립이사장은 여기서 포항공대의 모델을 찾았습니다. ‘소수정예의 연구중심대학’이라는 정체성이 확립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영국의 럭셔리 수제작자동차 브랜드 ‘롤스로이스(Rolls-Royce)’ (사진 출처: 롤스로이스 공식 홈페이지)
‘쇠 만드는 공장’에서 ‘사람 만드는 공장’으로
박태준 설립이사장은 평소 자신을 "'쇠 만드는 공장'과 '사람 만드는 공장'을 모두 세운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는 철강에서 보여준 '일류정신'을 교육에서도 어김없이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해외 저명 교수를 초빙하고 첨단 연구시설을 갖추는 데 아낌없는 투자가 이어졌습니다.
그가 남긴 유언과도 같은 한마디는 지금도 포스텍이 가야 할 길을 선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포항공대는 종합대학이 아닌 소수정예의 명문 공과대학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것 한 가지뿐이다."
그의 확고한 철학은 대학의 마스터 플랜과 캠퍼스 설계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포스텍의 정신적 뿌리가 되었습니다.
기록으로 보는 설립이사장의 진심
"20년 전 오늘, 나는 포항의 이 언덕에 칼텍과 같은 대학을 세우려는 원대한 포부와 이상을 품고 있었다. 그것이 제철보국에 의한 교육보국의 길이며 기업의 사회적 공헌을 가장 훌륭하게 실천하는 길이라고 확신했다." (2006년 12월)
"학교를 설립할 때도 제철소를 건설할 때와 마찬가지로 세계 최고 수준을 목표로 삼았다. 무엇이든지 세계 최고가 되자, 이 소망을 담았던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철소를 추구할 때 세계 최고 제철소로 성장할 수 있듯이,세계 최고 수준의 학교를 추구할 때 세계적인 교육 환경을 조성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지, 덕, 체를 겸비한 글로벌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것이다." (2011년 2월)

설립이사장 청암 박태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