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의 기적 ― 불가능을 설계하다
- 등록일 :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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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③ 2년의 기적 ― 불가능을 설계하다
글|이광수
주어진 시간은 단 2년
1985년 1월, 포항제철은 문교부에 기계·금속·전기전자·전자계산·산업공학·가정관리, 6개 학과에 각 80명 정원이라는 내용을 담은 ‘포항공과대학 설립 계획서’를 제출했습니다.
대학 설립이라는 전례 없는 대업 앞에서, 박태준 설립이사장은 포항제철의 조직력과 추진력을 총동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해 2월 5일, 그는 이대공 상무이사를 대학건설본부장으로 임명했습니다. 40대 초반에 임원으로 발탁된 이대공 상무이사는 경기고·서울법대 출신으로 추진력이 뛰어났고, 회사의 주요 결정이 이루어지는 임원 회의에 과장 시절부터 배석한 진기록을 가진 인물로, 박태준 회장의 의중을 그 누구보다 잘 헤아렸습니다.
"우리는 국제 수준의 대학을 설립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2년 안에 완전체로 끝내야 한다. 요원은 직원 중 가장 우수한 사람을 뽑아 써라."
이대공 상무가 본부장으로 임명되자마자 박태준 설립이사장으로부터 받은 첫 지시였습니다.
이후 7월 15일에는 대학 설립에 관한 최고 의사결정기구로서 대학설립심의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위원장 박태준 설립이사장 (포항제철 회장)
부위원장 안병화 (포항제철 사장)
위원 김호길 학장
박득표 (포항제철 부사장)
김철우 (포항제철 부사장/기술연구소장)
조말수 (포항제철 상무이사)
이대공 대학건설본부장 (포항제철 상무이사)
신상은 (제철학원 부이사장)
위원회는 개교까지 총 11차례 회의를 열어 학교 이름, 교수 초빙 방침, 신입생 선발 기준 등 핵심 사안들을 결의했습니다. 이는 대학 설립이 포항제철 전 구성원이 하나로 뜻을 모아 추진하는 대업임을 분명히 한 것이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정표 앞에서
2년 안에 설립 인가를 받고, 부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짓고, 교수를 초빙하고, 학생을 뽑아 개교한다는 이 방침은, 대학건설본부 요원들에게 거의 실현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전문가들조차 '부지가 확보된 다음에도 최소3년은 필요하다'며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하나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없이 모래벌판에 제철소를 지은 포항제철의 정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힘이었습니다.
대학건설본부는 먼저 해야 할 일의 목록부터 만들었습니다. 부지 확정과 매입, 용도 변경 허가, 건물 설계와 시공, 실험·연구 장비 반입, 교명과 학과 확정, 설립 인가, 교수 초빙, 학생 모집…. 하나하나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어려운 과제들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개교일을 기점으로 각 일정을 역순으로 배치했습니다. 각 업무의 최소 소요 일정과 서로 간의 연결성을 따져 보았고, 하나의 일이 지연되면 전체 일정이 흔들리는 구조였기에, 시행착오는 절대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저녁 늦게 퇴근하고 새벽 일찍 출근하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몸은 고되어도 그들을 버티게 한 것은 '대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긍지, 그리고 그 시절 포항제철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던 ‘사명감’이었습니다. 1년 9개월 동안, 그들은 단 1분도 허투루 쓰지 않으며 일했습니다.
‘청암로 77’의 시작
대학 부지의 초기 후보지로는 포항시 북구 양덕동과 죽천 지역 등이 검토되었으나, 최종적으로 낙점된 곳은 지금의 캠퍼스 일대였습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인근 효자주택단지의 도로·전기·상하수도 등 기반 시설을 바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 또 하나는 부임할 교수들의 자녀 교육을 해결해 줄 제철학원 각급 학교가 가까이 있다는 것. 세계 각지의 우수 교수를 유치하려면 생활 인프라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염두에 둔 선택이었습니다.
총 37만 평 규모의 예정 부지. 그중 지금의 교사 지역 (위쪽 캠퍼스) 12만 평은 조선내화(주)가 사원 주택단지를 조성하려 야산을 밀어 이미 개발해 둔 땅이었습니다. 포항제철은 양학동에 있던 자사 연수원 부지와 이를 맞교환하는 협상을 성사시켰습니다. 덕분에 기숙사와 교수 아파트 부지를 매입하는 동안에 교사 지역 토목 공사를 바로 시작할 수 있어 빠듯한 개교 일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주민들이 내어준 땅
예정 부지 안에는 134세대의 주민이 살고 있었고, 지주는 467명에 달했습니다. 분묘도 327기나 산재해 있었습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에 갑자기 대학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반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대학건설본부는 대학설립이 '지역사회의 숙원 사업'임을 설명하며 힘든 설득을 이어갔습니다. 박태준 설립이사장은 직접 "토지 보상가는 가능한 최고로 해주라"고 지시했습니다. 두 곳의 감정기관에 높게 감정해줄 것을 요청한 것도 그 뜻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지역 사업가 황대봉 대아그룹 회장은 자신이 조성한 시내 부지를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제공해 주민 이주에 속도를 높여 주었습니다. 또 천신일 세중(주) 대표는 예정 부지 안의 자기 소유 6만 2천 평(감정가 2억 7천만 원)을 무상으로 기증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래 기억해야 할 것은, 조상 대대로 일궈온 터전을 기꺼이 내어준 주민들의 협조와 희생입니다. 포스텍 캠퍼스의 모든 나무 한 그루, 건물 한 채의 밑바탕에는 그분들의 결단이 담겨 있습니다.

포항공대 건물이 들어서기 전의 대학부지 전경. 지금의 지곡회관과 생활관 지역에는 월성 이씨 집성촌이 있었고, 교수아파트 자리에는 농수로를 따라 옹기종기 가옥들이 모여 있었다.
초고속으로 통과시킨 도시계획
37만 평의 땅을 '대학 부지'로 공식 전환하려면 포항시와 경상북도 그리고 건설부까지 세 기관의 심사와 승인 절차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포항시와 경상북도는 어렵게 통과했는데, 건설부에서 예상치 못한 장벽을 만났습니다. 7월 4일 문교부로부터 대학 설립 가인가를 받은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제출한 신청서를 두고, 담당국장이 "학생 수에 비해 부지가 지나치게 넓다"며 거부 의사를 밝힌 것입니다. 연구중심대학으로서의 비전과 특성을 아무리 설명해도 입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결국 박태준 설립이사장이 직접 건설부 장관에게 대학의 비전과 국가적 의미를 담은 공식 서한을 보냈고, 마침내 1985년 8월 14일,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사흘 후인 1985년 8월 17일, 역사적인 포항공대 부지조성공사 착공식이 열렸습니다. 하루도 헛되이 보낼 수 없었던 그 여름의 기억입니다.

부지조성공사 착공식에서 설립이사장이 성공적인 대학건설을 기원하며 힘차게 모래를 뿌리고 있다. 사진 맨 오른쪽에는 김호길 학장이 시삽을 하고 있다.
설립자의 철학을 캠퍼스에 새기다
부지 매입과 인허가 절차를 밀어붙이는 동시에, 대학건설본부는 캠퍼스의 청사진을 그리는 작업에도 착수했습니다. 기본 구상은 미국의 Roe/Eliceo 설계회사에, 세부 설계는 간삼·원도시·일건 등 국내 최고 수준의 설계회사에 맡겼습니다.

마스터플랜 미국자문단이 대학부지를 답사하였다. (1985년 3월)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은 필요할 때마다 건물을 하나씩 짓다 보니 캠퍼스의 기능성과 통일성이 결여되었다는 평을 듣곤 합니다. 그러나 포항공대는 달랐습니다. 처음부터 최종단계 2003년의 대학규모인 9개 학과, 학생 수 2,950명 (학부생 2,000명, 대학원생 950명)과 교수 150명이라는 목표를 정해 놓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건물과 시설을 담은 마스터 플랜을 수립했습니다. 계획을 먼저 세우고 이를 고수한 덕분에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마스터 플랜 수립 과정에서 박태준 설립이사장이 직접 제시한 지침들은 지금의 캠퍼스에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Roe/Eliceo 설계사 방문 (1985.4.25.)>
-포항공과대학은 앞으로도 대전제가 종합대학이 아닌 공과대학으로 계속 발전시킬 계획이므로 레이아웃 계획시 반영되도록 할 것.
<대학·연구소 설립 관련 주요사항 보고 (1985.7.4.)>
-공과대학은 위치 선정에서부터 레이아웃, 규모, 내부설계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논리정연하여야 하며 명확한 철학이 있어야 함. 누가 묻더라도 명확히 답변할 수 있도록 학교 모든 시설의 논리와 철학이 명확해야 함.
-인프라 설비는 전부 지하에 넣어 하나도 밖에 나와서는 안 됨.
40년이 지난 지금, 지침 하나하나가 실제 캠퍼스에 얼마나 충실하게 구현되어 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도 포스텍 캠퍼스를 새롭게 보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대학 마스터 플랜 조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