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려 하기보다, 기꺼이 묻는 쪽을 택했습니다"ㅡ 빛의 미래를 설계하는 스승과 제자, 노준석 교수·김주훈 박사 인터뷰
- 등록일 : 202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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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려 하기보다, 기꺼이 묻는 쪽을 택했습니다"
ㅡ 빛의 미래를 설계하는 스승과 제자, 노준석 교수·김주훈 박사 인터뷰
글|POSTECH Creators 김소현 (신소재공학과 24)
"뉴스에서 투명 망토 얘기를 보고 꽂혔습니다."
빛의 경로를 마음대로 구부리고, 평면의 현실을 3차원으로 펼쳐 보이는 꿈의 소재. SF 영화 속 이야기로만 여겨지던 메타물질(Metamaterial) 연구에 25년을 바쳐온 학자가 있습니다. POSTECH 노준석 교수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전자전기공학과/융합대학원)입니다. 그리고 7년 전, 호기심을 안고 그의 연구실 문을 두드린 학부생은 어느덧 두 편의 세계적 학술지 Nature에 공동 제1저자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김주훈 박사로 성장했습니다.
2026년, 노준석 교수 연구팀은 국내 최초로 단일 연구팀이 Nature에 동시에 두 편의 논문을 게재하는 기념비적인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하나는 메타 렌즈를 활용해 2D 디스플레이를 3D로 전환하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이며, 다른 하나는 그 핵심 구조를 상업적 규모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 공정 기술입니다. 삼성전자와의 공동 연구로 탄생한 이 성과는, 과학이 우리의 삶을 바꾸는 혁신 기술로 피어나는 순간을 증명합니다.
POSTECH 개교 40주년을 맞아, 두 사람을 직접 만나 그 긴 여정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Part 1. 노준석 교수 인터뷰
Q1. 이번 두 편의 논문을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저희 연구실의 핵심 주제인 ‘메타물질’은 단순한 소재라기보다, 빛을 제어하는 ‘구조’에 대한 개념입니다. 이번 성과는 이 메타 구조를 바탕으로 한 두 가지 축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 논문은 메타 구조를 렌즈 형태로 만들어 디스플레이에 적용한 응용 연구로, 2D 화면을 자유롭게 3D로 전환해 주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을 담고 있습니다. 두 번째 논문은 이러한 메타 렌즈를 상업적 수준으로 찍어낼 수 있는 ‘대량생산 공정 기술’을 다룹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훌륭한 개념이라도, 결국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면 상용화의 문턱을 넘을 수 없습니다. 삼성전자와의 협력을 통해서 기초 연구와 공정 연구를 동시에 진행했고, 결과적으로 과학이 기술이 되고, 기술이 일상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이클을 증명해 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Q2. 메타물질 분야를 대표하는 연구자로 평가받고 계십니다. 오랜 기간 쌓아오신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가장 큰 노하우는 역설적이게도 ‘내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는 인정에서 출발합니다. 주변의 동료를 믿고 기꺼이 전문가를 찾는 것이죠. 연구자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가 자신의 주장이 무조건 맞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내 생각에 타인의 지혜를 덧붙일 때 비로소 더 훌륭한 아이디어가 탄생한다고 믿습니다.
혼자서 100년을 고민해도 풀지 못할 문제가,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머리를 맞대면 순식간에 해결되기도 합니다. 종종 연구자들은 아이디어를 ‘뺏길까 봐’ 소통과 공유를 꺼리곤 합니다. 하지만 지식을 나누고 협력하면, 혼자서 이룰 수 있는 1의 성과가 10이 되고, 100이 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은 결국 ‘인간적인 신뢰’입니다. 동료를 경쟁자가 아닌 친구로 믿고 의지할 때, 그 굳건한 신뢰 위에서 진정한 연구의 시너지가 폭발하게 됩니다.
Q3. 교수님께 논문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리고 '좋은 논문'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강조하고 싶은 건, 세상에 ‘나쁜 논문’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논문은 저마다의 영역에서 세계 최초이며, 모든 연구는 고유한 가치를 지닙니다.
논문은 연구자가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이자 무기입니다. 제가 365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제 연구를 직접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논문이라는 정제된 형태가 있어야지만 시공간을 넘어 전 세계 연구자들과 지식을 나눌 수 있고, 지적 소유권도 확실히 인정받을 수 있죠.
사람들은 Nature이나 Science 같은 최상위 저널에 실려야만 훌륭한 연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주 작은 진보라 할지라도 그 발걸음들이 하나둘 쌓이면 결국 세상이 바뀌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진정으로 좋은 논문이란, 저널의 이름값을 넘어 학계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논문입니다.

(좌) 메타렌즈 시연 (우) 디스플레이 시연 사진
Q4. 공학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마음가짐은 무엇인가요?
핵심은 ‘열린 마음’과 ‘소통’입니다. 주변에서 연구를 참 잘한다고 평가받는 분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질문을 아주 잘합니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문가에게 다가가 기꺼이 내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뛰어난 거죠. 무시당할까 봐 혼자 끙끙 앓기보다는, 용기 낸 한 번의 질문으로 훌쩍 성장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친구가 많은 사람이 연구도 잘한다는 겁니다. 결국 내 논문과 연구를 읽고 평가하는 것도 동시대의 동료 학자들이니까요.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의 진정성과 신뢰는 연구 생태계에서도 고스란히, 그리고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Q5. 오랜 시간 연구를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학부생 때는 무사히 졸업하는 것, 박사 과정 때는 좋은 곳에 취업하는 것 등 시기마다 목표가 달랐죠. 교수가 된 지금은 솔직히 매일매일 주어진 과제들을 치열하게 해내며 살아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의 고된 여정을 버티게 하는 굳건한 원동력을 하나 꼽자면, ‘학생들’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제 연구실 학생들을 모두 제 자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가장 큰 바람이 자식이 사회에서 잘 자리 잡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듯, 저 역시 우리 연구실 식구들이 졸업 후 원하는 곳에서 마음껏 꿈을 펼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자 동력입니다. 그 책임감과 사명감이 끝이 없기에, 저 역시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Q6. 개교 40주년을 맞아, 다음 40년의 POSTECH은 어떤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보통 하나의 대학이 온전히 뿌리를 내리고 흔들림 없는 반열에 오르려면 최소 10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들 합니다. POSTECH은 사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지방에서 시작해 단기간에 세계적인 명문으로 자리 잡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기적 같은 케이스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제는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될 때입니다. 과거 우리를 롤모델 삼아 출발했던 싱가포르 난양공대(NTU) 같은 대학들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우리를 앞서가고 있습니다. 자만하지 않고 그들의 혁신을 다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가올 40년, POSTECH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동문들의 선순환 구조’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엄청난 혜택을 학교로부터 받으며 공부합니다. 훗날 사회에 나가 그 가치를 깨닫고, 후배들을 위해 다시 환원화는 건강한 사이클이 정착되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애교심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학교 차원의 정교한 전략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학문적 수월성의 극대화’입니다. 우리는 종합 대학과 달리 규모가 작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처럼 철저하게 ‘소수 정예’로 승부해야 합니다. 1명이 100명의 몫을 해내는 대체 불가능한 핵심 인재를 길러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POSTECH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Part 2. 공동 제1저자 김주훈 박사 인터뷰
Q1. 이번 두 편 학술지 모두 공동 제1저자로 참여하셨습니다. 긴 연구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두 프로젝트 모두 약 5년 전부터 시작된 장기 과제였습니다. 공학 연구를 하며 가장 뼈저리게 느낀 어려움은, 이론적으로 완벽하게 증명된 개념을 현실의 물리적 결과물로 구현해 내는 과정입니다. 막상 실험실에서 부딪혀보면 예상치 못하게 실패하는 경우가 부지기수거든요. 실패의 원인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듯한 막막함이 가장 견디기 힘듭니다. 그런 숱한 시행착오가 무려5~6년 내내 반복됐죠.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막막함조차 어느새 익숙해지더라고요. ‘계속 부딪히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답을 찾을 것이다’라는 긍정적인 끈기가 생겼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단단한 마음가짐은 노준석 교수님께 가장 크게 배운 유산입니다.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며 조급해하기보다, 지금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문제들을 한 걸음씩 묵묵히 풀어나가는 태도를 가지는 거죠.
Q2. 수많은 좌절의 순간을 극복하고, 5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연구를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처음 연구실에 들어왔을 때 한 선배가 말했어요. "메타 물질 대량생산 문제 해결하면 Nature에 논문 쓸 수 있어." 그 한마디가 관심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게재’라는 거대한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고 5년을 버티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순간이 너무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어느 순간부터 방향을 바꿨습니다. 세계 최고의 학술지에 논문을 쓰겠다는 원대한 목표보다, 당장 오늘 내 실험대 위에 놓인 작은 문제 하나를 온전히 해결하는 데 집중하기로 한 것이죠. 당연히 될 줄 알았던 실험이 번번이 실패하다가 마침내 성공했을 때 찾아오는 짜릿함이 있습니다. 그 작은 성취감, 이른바 ‘도파민’들이 하루하루 모여 저를 지탱해 주었고, 결국 5년이란 험난한 여정을 완주하게 만든 진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Q3. 학부생 시절 연구 참여부터 박사 졸업까지 포스텍, 노준석 교수님 연구실에서 연구를 이어오셨습니다. 학부생 때와 지금,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학부 시절에는 막연한 열정만 앞섰던 것 같습니다. 연구를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방향성도 몰랐고, POSTECH이 세계 무대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가졌는지도 체감하지 못했죠.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세계 최정상급 연구자들과 나란히 경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커뮤니케이션의 가치’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학부 때는 혼자 책상에 앉아 파고드는 공부가 전부인 줄 알았지만, 대학원 과정을 거치며 타인의 기술과 제 아이디어가 결합할 때 폭발적인 시너지가 나고, 그것이 얼마나 흥미로운 결과로 이어지는지 체득했습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협력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 제게는 가장 큰 성장입니다.
Q4. 학업과 연구의 과정 속에서 놓치지 않고 지켜온 태도나 습관이 있다면요?
스스로 항상 부족하다고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려 짐을 짊어지기보다, 모르는 것은 가까이 묻는 것이죠. 연구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 이 선배, 저 선배를 쫓아다니며 묻곤 했는데, 돌이켜보니 그것이 제게 가장 큰 자산이 될 훌륭한 습관이었습니다.
노준석 교수님께서 종종 ‘완벽을 기하느라 끙끙 앓는 학생보다, 오히려 학점이 조금 낮더라도 묻는 것에 거리낌 없는 학생들이 연구를 더 잘하기도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내려놓고, 모르면 묻고, 그 답을 온전히 내 것으로 흡수하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 저를 이끌어온 가장 중요한 방식입니다.
Q5. 연구자의 길을 걷고자 고민하는 POSTECH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솔직히 저 역시도 학부생 때는 제가 얼마나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나니, 물리학과에서 기계공학과로 자유롭게 전과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것, 학부생 신분으로 연구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 세계적 수준의 나노 공정 인프라를 직접 만지며 연구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 모두가 POSTECH이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번에 Nature에 두 편의 논문이 동시에 게재된 쾌거 역시 개인과 연구실의 치열한 노력에 더해 학교의 압도적인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결코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이 훌륭한 환경을 맘껏 누리며 무엇보다 ‘행복한 마음’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학위 과정은 길게 보면 6년이 넘는 긴 마라톤입니다. 스스로의 마음이 행복하고 건강해야, 그 안에서 연구도 훌륭한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