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에서 1을 만드는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ㅡ 바이러스를 인류의 도구로 바꾼 이상민 교수의 단백질 설계 이야기
- 등록일 : 2026.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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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에서 1을 만드는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ㅡ 바이러스를 인류의 도구로 바꾼 이상민 교수의 단백질 설계 이야기
글|POSTECH Creators 지은수 (산업경영공학과 24)
"바이러스는 우리를 공격하는 존재였죠. 그런데 그 정교한 구조를, 이번엔 우리가 인류를 위해 쓰는 겁니다."
우리는 보통 바이러스를 '맞서 싸워야 할 적'으로 떠올립니다. 둥근 단백질 껍질 안에 유전자를 담고, 표적 세포를 찾아 침투해 스스로를 복제하는 존재. 그런데 만약, 바로 그 정교한 침투 구조를 통째로 빌려와 '치료용 물질을 정확한 곳에 배달하는 택배 상자'로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요?
POSTECH 화학공학과 이상민 교수 연구팀이 해낸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바이러스 단백질을 그대로 재활용한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완전히 새롭게 설계한 인공 단백질만으로 바이러스를 닮은 거대 구조체를 자유자재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 결과는 올해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실렸고, 이상민 교수는 202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베이커(David Baker) 교수와의 공동연구를 이끈 주역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택한 이상민 교수를 직접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상민 교수님)
Part 1. 연구 이야기 ㅡ 바이러스를 모방하다
Q1. 이번 연구의 핵심인 '나노케이지'가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왜 의학적으로 중요한지 일반 독자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나노케이지'는 말 그대로 나노 사이즈의 케이지, 즉 '우리(cage)' 구조입니다. 직경이 수십 나노미터에서 수백 나노미터 정도 되는 아주 작은 우리를 단백질로 만든 것이라, 단백질 나노케이지라고 부르죠.
케이지는 결국 '껍질 구조'예요. 껍질이 우리 모양을 이루고 있으니, 그 안에 내부 공간이 생깁니다. 바로 그 공간에 우리가 원하는 물질을 담을 수 있어요. 나노 사이즈니까 아주 작은 물질들이겠죠. 약물일 수도, 치료용 단백질일 수도, 치료용 유전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케이지의 바깥쪽을 잘 설계하면, 우리 몸에서 문제가 있는 조직이나 세포로 정확히 찾아가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안에는 치료용 물질을 싣고, 밖에는 원하는 목적지로 가는 주소를 적어두는 셈이죠.
꼭 의료용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담아 원하는 곳으로 전달하는 '전달체'로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구조라고 보시면 됩니다.

(AI로 설계된 나노케이지의 모습)
Q2. AI가 이번 단백질 설계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나요? 기존 방식으로는 왜 어려웠고, AI가 어떤 부분을 돌파구로 열어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좋은 질문이에요. 사실 단백질을 설계하고 엔지니어링하는 연구는 옛날부터 있었습니다. 다만, 성공률이 높지 않았어요. 단백질이라는 것이 굉장히 복잡한, 어떻게 보면 거대한 '분자 기계'거든요. 수많은 분자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그 구조와 움직임, 기능을 예측하는 일이 예전 방식으로는 성공률이 낮고 시간도 오래 걸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단백질을 아주 제한적으로만 다뤄왔던 거죠.
그런데 AI 모델들이 등장하고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단백질의 움직임과 특성을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러면서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단백질을 만들거나 수정하는 일이 가능해졌고, 결국 제가 머릿속에 그리던 구조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게 된 겁니다. AI가 단백질에 대한 이해도와 제어 능력, 그 정확도를 크게 끌어올려 준 거죠.
흥미로운 건, 정작 저는 AI를 정규 교육과정으로 배운 세대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연구하는 도중에 AI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다 보니, 독학하거나 동료들과 이야기하며 배웠습니다. 지금은 제가 직접 AI 수업을 하고 있는데, 학생들에게 늘 미리 말해둬요. "나는 실전에 뛰어들어 부딪치며 배운 사람이라, 잘 정리된 정규 과정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고요. 아마 저희 세대 연구자 대부분이 그럴 겁니다.
Part 2. 베이커 교수님과의 시간
Q3. 2024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내셨습니다. 그 현장에서 보낸 시간이 교수님께 어떤 의미였고,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사실 제가 지도를 받을 당시엔 베이커 교수님이 노벨상을 받기 전이었어요. 제가 POSTECH에 와서 일을 시작한 뒤에 받으셨죠. 하지만 그전에도 이미 단백질 설계 분야를 세계적으로 선도하는 연구실로 워낙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제가 배운 가장 큰 것은, 의외로 '리더십의 방식'이었어요.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인 큰 그룹을 이끄는 분이라면, 왠지 엄청난 카리스마와 강한 리더십이 있어야 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베이커 교수님이 랩을 이끄는 방식은 정반대였습니다. 굉장히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 자유로운 토론을 권장하셨어요. 본인의 방향을 주입하는 대신,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내 역할은 치어리딩(cheerleading)을 하는 것이다."
자기는 그저 옆에서 응원할 뿐이고, 결국 각자가 스스로 동기를 가져야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거였죠. 그 말이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개개인의 지적 호기심을 북돋아 주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환경, 그것이 그 연구실을 세계적인 곳으로 만든 힘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리고 저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베이커 교수님(왼쪽)과 이상민 교수님(오른쪽)의 모습)
Q4. 그 경험이 지금 POSTECH에서 연구실을 운영하시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그게 제가 그곳에서 가장 깊이 느낀 점이에요. 정해진 길을 가게 하는 게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말로는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학생이 스스로 개척하도록 두는 데에는 엄청난 인내가 필요하거든요. 이미 알려진 길을 알려주면 빠르게 잘 가겠죠. 하지만 그건 결국 '이미 알려진 것'을 따라가는 데 그칩니다.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기엔 적절하지 않은 방식이에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이 때로는 실패도 겪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것저것 시도하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씩 새로운 길을 닦아 나가도록 기다려주려 합니다. 옆에서 용기를 북돋아주고, 연구 환경을 최대한 지원하면서요. 제가 받았던 혜택을, 제 학생들에게도 그대로 주고 싶은 거죠.
Part 3. 연구의 미래, 그리고 POSTECH
Q5. 단백질 설계 분야에서 AI의 역할이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이 분야는 어떤 모습일까요? 교수님은 그 미래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신가요?
AI 모델들이 워낙 빠르게 쏟아져 나오다 보니, 솔직히 어디까지 발전할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아요. 예측이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그래도 방향성을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지금 '하나의 단백질'을 분석하고 예측하고 설계하는 일은 꽤 잘 구축되어 있어요. 하지만 단백질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동시에 모여 일어나는 현상, 혹은 단백질이 DNA나 이온처럼 세포 안의 다른 물질들과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현상에 대한 이해는 아직 부족합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생물계가 워낙 복잡해서 3~5년이 걸릴 수도, 10년 이상 걸릴 수도 있어요. 그건 그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죠. 하지만 결국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 다음 단계로 조금 빨리 넘어가고 싶어요. 단일 단백질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연구자라면 새로운 필드에 먼저 발을 내딛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여러 단백질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며 새롭게 생겨나는 기능들을 설계하는 방향, 그 '시스템 안에서의 단백질 거동'을 예측하는 연구를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빠르게 잡아 나가고 싶습니다.
Q6. 이번 기술이 실제 임상에 적용되기까지 어떤 단계들이 남아 있나요? 유전자 치료제나 차세대 백신으로 실현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이게 앞서 말씀드린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치료용 유전자를 담아 특정 세포로 전달하는 한두 가지 기능은 이미 가능해요.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실제로 우리 몸 안에서 쓰이려면, 세포 안의 수많은 물질, 다른 단백질과의 상호작용까지 복합적으로 이해되어야 안전하고 효과 좋은 약물이 되거든요. 그런데 아직 그 정도의 예측은 불가능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허들이 '독성'이에요. 어떤 물질이 사람의 위에서는 괜찮다가 간으로 가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이렇게 복잡한 시스템 안에서의 거동, 독성이나 면역 반응 같은 것을 예측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이걸 넘어서야 실제 적용이 가능하죠.
결국 AI가 얼마나 빠르게 이 복잡계를 예측해 내느냐에 달려 있어요. 하지만 전 세계 제약회사들이 이 분야에 엄청난 돈과 관심을 쏟고 있으니, 저는 그리 길어지진 않을 거라 봅니다. 감히 예측해 보자면, 5년에서 10년 안에는 단백질 설계 기술이 유전자 전달체나 백신으로 활용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보고 싶어요.

(자연이 미처 만들지 못한 구조를 화면 위에 그려내는 이상민 교수)
Q7. 올해는 POSTECH 개교 40주년입니다. 교수님이 POSTECH에 남기고 싶은 유산은 무엇이고, POSTECH은 교수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남기고 싶은 유산이라… 어려운 질문이네요. 물론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워낙 좋은 분들이 함께하고 계시니까요.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베이커 교수님 연구실에서 배운 그 '문화'를 전해주고 싶습니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잘해온 방식 중 하나는, 이미 알려진 것을 굉장히 빠르게 쫓아가는 거예요. 정말 잘하죠. 그런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문화는 어디서든 쉽지 않습니다. 총장님께서도 "1에서 100으로 가는 것보다 0에서 1로 가는 인재를 키우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거기에 깊이 공감해요. 0에서 1로 가는 길은 인내심도 많이 필요하고 오래 걸리지만, 그런 연구 문화를 가져가는 하나의 연구실이 된다면 POSTECH의 긴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POSTECH은 제게 '감사한 곳'이에요. 다행히도 POSTECH은 '기다려주는 곳'이거든요. 당장의 결과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한 연구자가 방향성을 가지고 의미 있는 일을 하려 할 때 행정적으로 지원해주고, 주변 연구자들도 그걸 인정하며 기다려줍니다. 그런 문화가 있었기에 제가 배워온 것을 '여기서 한번 해보자'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어요. 다른 학교였다면 빠르게 실적을 내야 하는 압박이나 수업 부담이 컸을 텐데, 여유를 가지고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죠.
Q8. 앞으로 40년 후의 POSTECH을 상상해 본다면, 단백질 설계나 AI 기반 생명과학 분야에서 POSTECH이 어떤 역할을 하길 기대하시나요?
아까 잠깐 이야기했듯이, 제가 학생들과 하고자 하는 게 단일 단백질 설계를 넘어 '시스템 단위의 설계'를 파이오니어링(pioneering)하는 단계로 가져가는 것이거든요. 40년 뒤에 단백질 설계 분야가 크게 발전했을 때, 누군가 '이 모든 흐름이 대체 어디서 시작됐을까' 하고 돌아본다면, 그 출발점에 POSTECH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더 욕심을 내자면, 바로 우리 연구실이 그 첫 단추였으면 합니다.
40년을 다 잘 해낼 수 있을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그 '시작'이 되는 연구를 시작한 곳이 POSTECH이었으면 합니다. 0에서 1까지만 우리가 가주면, 1에서 100은 많은 사람들이 가줄 테니까요.
바이러스는 인류를 위협해 온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상민 교수 연구팀은 그 정교한 구조를 AI로 새롭게 설계해, 인류를 치료하는 도구로 바꿔놓았습니다. ‘1에서 100’의 길이 아닌, '0에서 1'의 길을 택한 연구자. 그리고 그가 학생들에게 물려주려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개척할 용기와 그것을 기다려주는 환경입니다.
40년 전 '한국에서 연구가 되겠느냐'던 질문은, 이제 '그 흐름이 어디서 시작됐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 대답의 한 줄에 POSTECH의 이름이 새겨지는 미래. 이상민 교수의 '0에서 1'은, 바로 그 미래를 향해 오늘도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