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 하나만 보고 걸어온 길 - 항공우주 전공 없이도 로켓은 만들 수 있습니다
- 등록일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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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 하나만 보고 걸어온 길
- 항공우주 전공 없이도 로켓은 만들 수 있습니다
글|이정락 (기계공학과 동문 (학 15, 통합 20, 2026년 박사 졸업), 현 친환경소재대학원 항공재료연구센터 박사후연구원)
[사진 1] 2022년, 극한구조역학연구실 동료들과 함께
Editor’s Note
완벽하게 갖춰진 환경에서 출발하는 연구자는 드뭅니다. 이정락 박사 역시 항공우주학과가 없던 교내 환경 속에서 직접 로켓 연소실험장을 짓고, 창업에 도전하며 본인만의 길을 개척해 왔습니다. 흔들리던 시기를 지나 담담하게 스스로 길을 만들어 온 한 공학자의 솔직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박사과정 4년 차까지, 저는 논문이 한 편도 없었습니다.
동기들은 하나둘 논문을 내는데 저만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으니, ‘이 방향이 맞는 걸까’, ‘나는 연구에 재능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밤마다 따라다녔습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꽤 오랫동안 흔들렸습니다.
그런데도 그만두지는 못했습니다.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저는 그냥, 로켓이 불을 뿜으며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 장면 하나에 마음을 빼앗겨 여기까지 온 사람이었고, 흔들리던 순간에도 그 마음만큼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제게 로켓을 연구할 수 있는 길이 처음부터 쉽게 주어졌던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없는 길을 찾아다니기도 했고, 때로는 직접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처음부터 꺼내보려 합니다.
불 뿜는 로켓이 좋았습니다
어릴 때 TV에서 로켓이 화염을 내뿜으며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보면 그냥 멋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막연한 동경이었지만, 나로호 발사를 지켜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로켓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또렷해졌습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시기에 나로호 3차 발사가 성공했고, 그 장면을 보며 그 마음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사실 그보다 조금 앞선 계기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영재교육원에서 ‘흑색화약 성분비에 따른 폭발력 비교’라는 주제로 자유탐구 활동을 진행한 적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께서 어떻게 허락하셨나 싶지만, 실험 장비와 안전 장비까지 마련해주시며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해보라”고 응원해주셨습니다. 적은 양으로도 큰 힘을 만들어내는 화약이 어린 저에게는 무척 신기했고, 자연스럽게 ‘이 힘으로 우주까지 갈 수 있는 로켓’에 관심이 옮겨갔습니다.
고등학교에서는 로켓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입시에 도움이 되지도 않았고 위험해 보이는 활동이라 선생님들이 처음부터 반기셨던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밥 먹는 시간과 쉬는 시간까지 쪼개가며 로켓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시면서 조금씩 제 열정을 인정하고 응원해주셨습니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가기보다는, 로켓을 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제가 갈 수 있는 길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습니다.
연소실험장부터 지었습니다
포스텍에 입학한 뒤에도 로켓을 계속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교내에는 항공우주학과도, 로켓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실도 없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쉽지 않을 거라고 걱정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래도 일단 해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학부생 연구 프로그램에서 지원금 200만 원을 받아 ‘효율적이고 재사용 가능한 로켓 엔진’을 만들어보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엔진에 필요한 부품은 직접 설계하고 가공해야 했고, 완성한 엔진을 시험할 장소와 장비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결국 전자저울 위에 엔진을 거꾸로 세워 연소시키고, 저울에 찍히는 값으로 추력을 측정했습니다. 지금 보면 꽤나 원시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결과물도 처음 꿈꿨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고, 지원금에 사비까지 보태다 보니 통장에는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다음에는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기숙사에서도 온통 로켓 생각뿐이었고, 제가 살던 기숙사 건물과 호수를 따서 ‘RC423’이라는 학부생 로켓 연구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저처럼 로켓을 좋아하지만 어디에서 배워야 할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몰라 답답해하는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실험장이었습니다.
로켓 엔진 실험은 고온·고압 가스를 다루기 때문에 안전이 가장 중요합니다.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였던 만큼 학교에서도 쉽게 허가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물질안전보건자료와 논문을 찾아가며 화재 가능성과 안전거리를 계산하고, 사고 시나리오별로 필요한 방호·소방 시설을 하나씩 정리했습니다. 항공대학교와 KAIST의 관련 시설도 찾아가 선행 사례를 살펴봤고, 교내 여러 부서와 1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렇게 2018년 초, 학부생들이 직접 로켓 엔진을 시험할 수 있는 액체로켓 엔진 시험 설비가 교내에 만들어졌습니다.
완공된 실험장보다도 저는 그곳을 만들던 시간이 더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더운 날,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직접 자재를 옮기고 땀을 흘리며 하나씩 조립하던 순간들입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연구를 하려면 때로는 실험보다 먼저, 실험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요.


[사진 2] 2017~2018년, 연소실험장 공사 현장 / 완공된 연소실험장 사진
엔진을 만들다 회사를 차렸습니다
창업 역시 처음부터 회사를 만들겠다는 거창한 결심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켓 엔진을 제대로 만들려면 돈이 필요했고, 경험 있는 사람들의 조언도 필요했습니다. 마침 포스텍에서 ‘비즈니스 모델 스튜디오’라는 창업 수업을 들으며 다양한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로켓 개발비를 마련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닥치는 대로 지원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액체로켓 엔진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온라인 로켓 커뮤니티를 통해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함께 로켓을 만들어보자는 작은 프로젝트였지만, 만들고 시험하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규모가 커졌고 자연스럽게 창업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저희가 주목한 것은 소형위성 자체가 아니라, 그 위성을 ‘어떻게 쏘아 올릴 것인가’였습니다. 지금은 발사체 가격이 많이 낮아져 우주로 가는 문턱이 한결 낮아졌지만, 저희가 처음 도전하던 10여 년 전만 해도 발사 비용은 부담이 큰 수준이었습니다. 어렵게 탑재 기회를 얻더라도 여러 위성이 하나의 발사체에 함께 실리는 ‘라이드셰어’ 방식이다 보니, 메인 탑재체가 향하는 궤도에 같이 내려야 했습니다. 원하는 시점과 원하는 궤도를 고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초소형 발사체를 저렴하게 만들어 자주 쏘아 올린다면, 소형위성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궤도로 데려다줄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정해진 노선과 시간표를 따라가는 버스가 아니라,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주는 ‘택시’ 같은 발사체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KAIST 학생들과 대전을 오가며 개발과 운영을 병행했고, 실제 투자까지 받으며 학생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일이 하나의 회사로 커지는 과정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이후 프로젝트에서 나오게 되었지만, 당시 함께했던 동료들과는 지금도 꾸준히 교류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그 시간이 제게 남긴 것은 ‘회사’ 자체가 아니라 연구를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둔산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밤낮없이 로켓 엔진과 추력기를 만들 때는 논문이나 실적을 생각하기보다, 정말 만들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문제에 몰두했습니다. 또 미국에서 한 달 동안 잠재 고객들을 직접 만나고 다녔던 ‘공공기술 기반 시장연계 창업탐색 지원사업’ 프로그램에서는 공학자가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이 ‘내 기술’만 바라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내가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보다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먼저 봐야 했습니다.
*공공기술기반 시장연계 창업탐색 지원사업: 대학의 연구성과를 활용한 실험실 창업 가능성을 검증하고, 잠재고객 인터뷰를 통한 시장 탐색 및 창업 아이템 최적화를 지원하는 프로그램.
만드는 일 자체를 좋아하는 마음과, 그 기술이 어디에 필요한지 고민하는 시선. 그때 얻은 두 가지 태도는 지금도 제 연구를 움직이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사진 3] 페리지 초기 창업 멤버와의 단체 사진
기계공학이라는 바탕 위에서 연구의 해법을 찾았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할 때는 항공우주 분야의 연구실이 아니라 기계공학과 극한구조역학연구실을 선택했습니다.
2019년, 먼저 대학원에 진학한 선배가 실험하는 모습을 공강 시간마다 구경하러 다녔습니다. 실험과 시뮬레이션, 이론적 해석을 균형 있게 다루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당시 제가 공부하던 로켓 분야와 직접 관련된 연구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배울 것이 많아 보였습니다.
지금은 위성이나 탐사선이 우주에서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우주 추진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주 추진 방식은 크게 화학 추진과 전기 추진으로 나뉩니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화학 추진은 순간적으로 큰 힘을 내지만 연비가 낮고, 전기 추진은 연비는 좋지만 큰 힘을 내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 두 방식의 장점을 결합해, 큰 힘을 내면서도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하이브리드 추진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항공우주학과가 없었던 환경도 지금의 연구 방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같은 분야의 동료와 수업이 많지 않아 어려웠지만, 그 대신 기계공학이라는 넓은 바탕 위에서 우주 문제를 바라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전자부품을 만드는 PCB 공정도, 금속 3D 프린팅도, 플라즈마도 제게는 모두 ‘로켓을 더 잘 움직이게 할 방법’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방식만 배우지 않았기에, 여러 분야의 도구를 가져와 자유롭게 섞어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연구도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글의 처음에 이야기했던 박사과정 4년 차로 돌아가 봅니다.
논문 한 편 없이 흔들리던 그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제 지도교수님이신 이안나 교수님의 믿음이 컸습니다. 연구 방향을 스스로 고민하고 정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셨고, 의욕이 앞서 미숙한 모습을 보일 때에도 제가 제 방식대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다듬어주셨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결과가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4년 차까지 한 편도 없던 논문이 이후 3년 사이 제1저자로 열네 편이 되었고, 올해 초에는 포브스코리아가 선정한 ‘30세 미만 30인’에 이름을 올리는 뜻밖의 소식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연구가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성과보다 먼저 그 시절을 떠올립니다.
‘그때도 결국 지나왔으니까.’
그 경험은 지금의 제게 꽤 든든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사진 4] 2025년, 플라즈마 하이브리드 추력기 연소 시험 장면

[사진 5] 2026년 2월 13일, 학위수여식. 같은 해 포브스코리아 30세 미만 30인(Science 부문)에 선정되었다.

[사진 6] 2026년, 포브스코리아 30세 미만 30인 선정
캠퍼스에는 우주를 향한 꿈이 쌓여갑니다
올해 포스텍은 개교 40주년을 맞았습니다.
제가 학부생이던 시절에는 로켓을 해보고 싶어도 어디에서 배워야 할지 몰라 직접 실험장을 만들고, 함께할 사람들을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캠퍼스를 걷다 보면 후배들이 직접 설계한 로켓을 만들어 실제로 발사합니다.
교내에는 로켓공학 수업도 생겼고, 저 역시 그 수업에 참여해 후배들을 가르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조금 묘한 기분이 듭니다.
제가 학부생 때 그토록 찾아 헤맸던 ‘로켓을 물어볼 사람’이 이제는 학교 안에 한 명씩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해보겠다고 나선 학생들과 그 가능성을 믿고 도와준 사람들이 조금씩 쌓여 만들어진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제 다음 목표 역시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하나는 제가 만든 추진기가 실제 위성이나 우주비행체에 실려 우주에서 작동하는 모습을 직접 보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후배들이 우주 추진을 연구하겠다고 해서 해외 대학이나 연구소를 먼저 떠올리지 않아도 될 만큼, 국내에서도 깊이 있는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데 제 몫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언젠가 다시 모교에서, 제가 좋아했던 로켓과 우주를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좋아하는 일에는 이미 정해진 학과와 진로가 있나요?
없어도 괜찮습니다.
저는 실험할 곳이 없어서 실험장을 만들었고, 엔진을 만들 돈과 사람이 필요해서 창업을 배웠으며, 항공우주학과가 없는 곳에서 기계공학의 여러 도구를 가져와 로켓을 연구했습니다.
돌아보면 길이 없던 순간들이 제가 어떤 연구자가 되고 싶은지를 가장 많이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니 정말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아직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빨리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길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