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의 나무들
- 등록일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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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의 나무들
글|이광수 & 대외협력팀
8월이 끝나 가고, 녹음이 짙어져 가는 캠퍼스를 거닐다보니 대학본관 동편에 핀 자주색 꽃이 눈에 들어옵니다.
포스텍의 교화, 목백일홍입니다. 6월에 피기 시작해 공기가 서늘해질 무렵까지 이어집니다. 백일 동안 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그 백일이 어느덧 막바지에 와 있습니다.
지금 캠퍼스는 나무를 보기 좋은 때입니다. 그늘이 가장 깊고, 꽃이 많고, 매미 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매일 지나치지만 자세히 들여다본 적 없는 나무들. 여름이 끝나기 전에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백 일 동안 피는 꽃
목백일홍은 배롱나무라고도 부릅니다. 대학본관, 노벨동산, 지곡회관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그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것이 대학본관 동쪽 화단의 나무입니다. 40년 전 설립이사장이 개교를 기념해 직접 심었습니다.


비석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浦項工科大學 開校 및 産業科學技術研究所 竣工紀念
포항공과대학 개교 및 산업과학기술연구소 준공기념
1986. 12. 3
學校法人 製鐵學園 理事長
학교법인 제철학원 이사장
浦項綜合製鐵株式會社 會長 朴泰俊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회장 박태준
이 꽃이 여러 후보를 제치고 교화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목백일홍은 한 송이가 오래 버티는 꽃이 아닙니다. 피고 지고를 쉬지 않고 반복하면서 백 일을 채웁니다. 옛사람들이 이 꽃을 글방 앞이나 서원 뜰에 즐겨 심은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공부하는 사람 곁에 두기 가장 어울리는 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멀고 힘든 길에서 필요한 것은 재능보다 인내라는 점을 일러주는 듯합니다.
지금 꽃이 한창인 회화나무
봄에 캠퍼스를 걷다 보면 유독 늦게까지 앙상한 나무가 있습니다. 다른 나무가 다 초록으로 물든 뒤에야 천천히 잎을 내는 회화나무입니다.
회화나무는 8월에 꽃을 피웁니다. 연한 노란색 꽃이 가지 끝에서 길게 늘어져 핍니다. 봄에 가장 게을렀던 나무가, 여름의 끝에서 꽃을 답니다.
그 모습이 당당해 옛사람들은 이 나무를 ‘선비나무’라 불렀습니다. 집에 심으면 큰 인물이 난다고 믿어 양반가와 서원 주변에 즐겨 심었습니다. 가까이는 안강 옥산서원의 회화나무 숲이 유명합니다.
대학본관 북쪽 출입문 좌우에 큰 고목이 한 그루씩 서 있습니다. 그중 오른쪽 나무가 개교 때 심은 그 나무 그대로입니다.

그늘을 만드는 나무, 마로니에
78계단에서 공학1동까지, 이 계절에 그 길이 걸을 만한 것은 마로니에 덕분입니다. 잎이 손바닥만하게 넓어 그늘이 두텁습니다.


"세느강변 소공원의 마로니에가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지금은 대학로로 바뀐 옛 서울대 문리대 자리에 많이 있었지요."
개교 전, 교목(校木)을 무엇으로 할지 검토하던 자리에서 박태준 설립이사장과 김호길 학장이 나눈 대화입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떠올린 나무가 마로니에였고, 그래서 이 길에 심겼습니다.
다만 그날 교목이 정해지지는 않았습니다. 전통이 충분히 쌓였을 때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정하도록 남겨 두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포스텍에는 지금도 교목이 없습니다.
포항에 히말라야시다가 많은 이유
포항 사람이라면 한 번쯤 궁금했을 것입니다. 이 도시에는 왜 이렇게 히말라야시다가 많을까.
캠퍼스는 물론이고 효자주택단지, 포항제철소, 시내 가로수까지 어디서나 보입니다. 사실 이 나무는 추위에 약합니다. 중부 지방으로 올라가면 겨울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서울에서 온 학생이라면 이 나무를 포항에서 처음 봤을 가능성이 큽니다.
히말라야시다는 포스코의 사목(社木)입니다. 사철 푸르고 원추형으로 곧게 뻗은 이 나무가, 그래서 이 도시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직원 한 사람이 살려낸 매화, 무은재매
대학본관 서편 정원에는 매화 한 그루가 있습니다. 무은재매(無垠齋梅)입니다.

무은재(無垠齋)는 김호길 초대 학장의 호입니다. 국제퇴계학상 수상을 위해 한국을 찾은 중국 사회과학원 신관결(辛冠潔) 교수가 지어 주었습니다. 없을 무(無), 울타리 은(垠), 집 재(齋). 분야의 경계를 두지 않았던 그의 학문 세계를 담은 이름입니다.
시작은 제1회 입학식 직후였습니다. 김호길 학장이 입학 기념으로 오엽송을 심다가, 뒷자리가 허전하다며 매화를 한 그루 더 심기로 했습니다. 안동 하회마을 류씨 종가에서 서애매(西厓梅) 가지를 얻어와 살구나무에 접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접이 붙지 않았고, 나무는 그냥 살구나무로 자라고 말았습니다.
이를 안타까워한 한 직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혼자 하회마을을 찾아갔습니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가지를 다시 얻어와 접을 붙였고, 이번에는 살았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김호길 학장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한 그 직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칭찬하곤 했습니다.
지금 그 매화 앞에는 화강암 표시석이 서 있습니다.

선비정신의 매화 향기가 교정에 가득하기를⋯⋯
1992년 봄 김호길 심다
매화 옆에는 살구나무 두 그루가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하나는 김호길 학장이 세상을 떠나기 두 해 전 한 번 더 접붙이기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타계 후 교양학부 권오봉 교수가 하회 매화를 접붙였다가 역시 실패한 나무입니다.
살아난 한 그루 옆에, 붙지 않은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무은재매는 봄의 시작을 알리며 2월 말에 핍니다.
마가렛 대처 수상이 심은 느티나무, 노벨동산의 중심으로 자리잡다
여름의 노벨동산은 그늘이 깊습니다. 그 시작은 느티나무 한 그루부터입니다.
1986년 5월 4일,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이 아직 개교도 하지 않은 대학 건설 현장을 찾았습니다. 김호길 학장이 영국 버밍엄대에서 학위를 받은 인연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직 영국 수상이 서울에서 그렇게 먼 포항까지, 그것도 문도 열지 않은 대학을 방문한 일은 당시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황량한 건설 현장 한 모퉁이에 급하게 환영 식단이 차려졌고, 그 옆에 느티나무 한 그루가 심어졌습니다.
"느티나무와 함께 포항공과대학이 세계 과학·기술의 본산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느티나무는 예부터 마을 입구에 정자나무로 심던 나무입니다. 오래 살고 크게 자라, 여름이면 그 그늘에서 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경업계에는 국가 원수급 인사가 기념식수를 할 때 크기와 수형이 비슷한 나무를 세 그루쯤 확보해 두고 판다는 불문율이 있다고 합니다. 그냥 심으면 잘 살 나무도 VVIP가 심으면 생존율이 크게 떨어져, 한밤중에 다시 심는 경우까지 값에 미리 넣어 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단번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몇 해 뒤, 이 나무 주변이 특별한 장소가 됩니다.
1989년 노벨상 수상자 11명이 포항공대를 찾아 이틀에 걸쳐 재학생·고교생과 좌담을 나눴습니다. 대학은 이들의 방문을 기념해 나무를 심고, 그 자리를 '노벨동산'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이후 포스텍을 찾은 수상자는 예외 없이 이 동산에 나무를 심고,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표석을 묻었습니다.
지금까지 41명의 노벨상·필즈상 수상자가 다녀갔습니다.
느티나무는 오늘도 노벨동산의 중심을 지키고 있습니다. 2011년 12월에는 그 바로 옆에 박태준 설립이사장의 조각상이 세워졌습니다.

동문을 지키는 왕소나무
동문 옆 야외조각공원에는 왕소나무가 서 있습니다. 높이 15m, 나무둘레 3.5m입니다.
캠퍼스의 나무 대부분은 개교를 앞두고 다른 곳에서 옮겨 심은 것입니다. 이 소나무는 다릅니다. 300여 년을 이 자리에서 그대로 자랐습니다.
지곡회관과 기숙사 일대는 원래 원주민들이 대대로 살던 마을이었습니다. 이 소나무는 '큰마을'이라 불리던 마을 어귀의 당산목이었습니다. 여름이면 농사일을 하다 이 그늘에서 쉬었고, 평상을 놓으면 마을회관 노릇도 했습니다.
대학이 들어서면서 주민들은 터전을 떠나야 했습니다. 떠나기 전, 그들은 대학에 이 나무 가까이에 건물을 세우지 말 것, 그리고 나무를 보호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대학은 그 부탁을 받아들였습니다. 나무 주변에 울타리를 치고 지금까지 관리해 오고 있습니다. 2019년 6월, 이 소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었습니다.

